윤리문자도는 유교 사회의 기본 윤리인 '효제충신예의염치'의 각 글자를 회화화하여 묘사하고 있다. 윤리문자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나름대로 그 덕목과 관련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각 소재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자.
윤리문자도는 한자 자체가 지니는 조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자가 지니고 있는 조형성이란 허신(許愼)이 《설문해자 說文解字》에서 말한 상형(象形)의 개념과 통하는 것으로써, 상형은 문자 제작의 최초 단계인 회화법을 말한다. ‘효제충신예의염치’ 등의 여덟 문자를 소재로 하고 있는 윤리문자도도 한자의 조형성을 바탕으로한 문자 예술의 한 분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윤리문자도는 각 글자마다 그 뜻과 관련된 일화나 상징물을 곁들여 그림으로써 회화성이 가미되어 있다는 점이 순수한 서예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윤리문자도는 장식의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기는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서민들 스스로가 인간과 나라에 대한 도리를 깨우치고 그것을 수행하여 궁극에는 이상적인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일종의 교화적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시대를 통하여 계층의 상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교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도교의 윤리 사상은 유교의 윤리와 도덕을 차입하고, 불교의 인과응보사상(因果應報思想)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내외겸양(內外兼養)과 함께 적선입공(積善立功) 함으로써 득선(得仙)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윤리 도덕을 지키는 것을 인생의 본래 의무라 하고, 이것은 인간의 이성(理性)에 의해 하라는 것이 아니고, 선(仙)을 얻기 위한 방편이라고 하였다. 곧 적선입공하면 복을 받고 죄를 지으면 화(禍)를 입는다.
아는 바와 같이 도교 사상은 장생불사(長生不死)하면서 이상적인 세계에 사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고 있다. 장생불사하기 위해서는 신선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데, 신선이 되기 위한 방법에 대해 도교의 주요 경전의 하나인 《포박자 抱朴子》에서는, “신선이 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충효화순을 본으로 삼아야 한다(欲求仙者 要當 以忠孝化順 爲本)” 〈對俗篇〉라 하였고, 또 “오래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선(善)을 쌓고 공을 세우려고 해야 한다(欲求長生者 必欲積善立功)” 〈微旨篇〉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현세의 당위적 윤리를 ‘효제충신....’등으로 규정 짓고, 그것을 성실히 수행하여 선을 쌓고 공을 세움으로써 선도(仙道)에 들어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효제충신예의염치’는 우리 나라 전통 사회에 있어서 인간 내지 사회윤리의 기본 덕목이었다. 이들 덕목은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하여 항상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화목하며, 사람 사이의 믿음을 존중하고, 예의 바르며, 언제나 검소·절제하며,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운 생각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치자들이 이러한 인간의 윤리 덕목 실천의 궁극적인 목적을 현실에 있어서 바람직한 인간 도리의 정립에 두고 있는 반면에 일반 서민들은 윤리 덕목의 실천을 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내지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선을 행하고 공을 세우면 그 당연한 결과로 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인데, 이것은 선인(善因)에는 선과(善果), 악인(惡因)에는 악과(惡果)로, 인업(因業)이 있으면 업보(業報)가 있다는 불교의 인과응보사상(因果應報思想) 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윤리문자그림은 ‘孝·悌·忠·信·禮·義·廉·恥’를 한 글자 씩 나누어 각 폭에 그리고 이것을 병풍으로 꾸민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문자 그림에는 이들 덕목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관련된 일화(逸話)나 고사(故事), 혹은 일화와 관련하여 상징성이 부여된 기물이나 동식물이 글자 획(劃)의 일부를 구성하거나 여백에 곁들여 그려진다. 이들 소재 중에는 삼강행실도나 오륜행실도에 등장하고 있는 소재들을 비롯하여 고사와 관련되는 인물 혹은 기물 등과 근엄한 유학자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었던 《시경》과 같은 고전 속에 나오는 소재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보면, 잉어, 죽순, 부채, 거문고, 귤 혹은 인물 등이 있는데, 이 소재들은 모두 효를 수행한 특정 인물과 그와 관련된 동식물이나 기물들이다. 효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 판소리나 민요 시조 등에서도 위와 같은 종류의 소재들이 나열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서 당시의 서민들이 보편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던 효행의 대표적인 사례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효자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판소리 등에 나오는 효행의 사례들과 비교해 보면 그 소재와 관련된 이야기와 상징성을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럼 먼저 판소리 〈심청가〉 중 심청이가 밥을 동냥하러 가는 대목에 나오는 효행에 관한 사례부터 살펴보자.
“아버님 듣조시오. 말 못하는 까마귀도 빈 수풀 저믄 날에 반포(反哺)할 줄 능히 알고, 곽거(郭巨)라 하는 사람 부모께 효도하여 찬수공양(饌羞供養) 극진할 제, 철모르는 어린 자식 맛난 음식 모두 먹어, 부모반찬 부족타고 양주(兩主) 서로 의논하여 산 자식 묻으렸고, 맹종(孟宗)은 읍죽(泣竹)하여 눈 속에 죽순 얻고, 왕상(王祥)은 고빙(叩氷)하여 얼음 속에 잉어 낚고, 육적(陸績)의 회귤(懷橘)이며 황향(黃香)의 선침(扇枕)과 증자(曾子)의 양지(養志)와 자로(子路)의 부미(負米), 이러한 대효(大孝)들은 만고사범 되었거던…. 오늘부터 집에 앉아 계시오면 혼자 밥을 빌어 조석 근심 도우리라.”
하였다. 그리고 시조 〈사친가〉에도,
“왕상(王祥)의 한빙이어(寒氷鯉魚) 지성이 감텬이오
맹종(孟宗)의 설상죽순(雪上竹筍) 신명이 도움이라
슬프다 우리 부모 동지(冬至) 길을 모르시나”
라고 하였다. 위의 〈심청가〉나 〈사친가〉에 등장하는 효성과 관련된 사례를 다시 정리해 보면, 왕상 과 잉어, 맹종과 죽순, 육적과 귤, 황향과 부채, 증자, 자로, 곽거의 효성, 까마귀 등이다. 효의 문자 그림에도 ‘대순탄금 (大舜彈琴), 왕상이어(王祥鯉魚), 황향침선(黃香枕扇), 맹종읍죽(孟宗泣竹), 육적회귤(陸績懷橘)’ 등의 화제와 함께 앞의 여러 가지 소재들이 등장하는데, 이것들에 얽힌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잉어
왕상의 효행과 관련된 소재이다. 왕상의 자(字)는 휴징(休徵)이며 진(晉) 임기인(臨沂人)이다. 위(魏)에 벼슬하여 대위(大尉)에 이르고 진(晉)에 들어가서 태보(太保)가 된 사람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계모가 엄동설한에 일부러 살아있는 물고기를 원할 때, 왕상은 이를 마다하지 않고 강에 가서 얼음을 두드려 깨니, 신령의 가호가 있어 쌍잉어가 뛰어 나왔다. 이를 잡아다가 왕상은 계모에게 정성껏 공양하였다 한다.
죽순
맹종의 효행과 관련된 소재이다. 맹종의 자는 공무(恭武)이며 삼국(三國) 때 강하인(江夏人)이다. 벼슬은 사공(司空)에 이르렀다. 그의 어머니가 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므로, 맹종은 대나무 밭으로 달려가 울면서 애원하니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별안간 죽순이 솟아났다. 맹종은 그것을 잘라 가지고 어머니께 달려가 공양하였다 한다.
부채
황향의 효행과 관련된 소재이다. 황향의 자는 문강(文强)이며 한(漢) 장제(章帝) 때 사람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더울 때는 부모가 누어 계시는 베개에 항상 부채질을 하고, 추울 때는 자신의 체온으로 부모를 따듯하게 감싸면서 부모 공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한다.
귤
육적의 효행과 관련된 소재이다. 육적의 자는 공기(公紀)이며 한나라 헌제(獻帝) 때 사람이다. 여섯 살 때에 원술(袁術)이라는 사람이 귤을 주니, 육적이 그것을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품속에 품으면서 고맙다고 하였다. 원술이 이상히 여겨 물으니, 육적이 말하기를 “어머니에게 갖다 드리려고 합니다.” 하였다 한다.
자로의 백리부미(百里負米)
자로는 공자(孔子)의 제자로, 성은 중(仲)이며 이름은 유(由)이다. 자로가 가난하여 늙은 어머니를 위해서 백리의 먼길에서 쌀을 지고 왔다 한다.
이상과 같은 효행의 사례들은 당시 일반 서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들인데, 이러한 사례들을 효자 그림에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인물 자체보다 그의 효행과 관련된 동식물이나 기물들을 그리는 것이 상례이나 종종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그림도 있다.
제(悌)는 형제간의 도리, 즉 서로 도우며 우애롭게 살아야 한다는 덕목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悌)자 그림에는 척령(脊令)이라고 하는 할미새와 상체(常)라고 하는 산앵두나무가 소재로 등장한다. 어떤 그림에는 화면 상단에 ‘춘회재분(春廻裁盆) 적체화홍(績花紅) 일난명원(日暖名園) 척령화포(脊令和咆)’라는 화제가 붙어 있기도 한다. 할미새와 상체가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소재로 선택되게 된 것은 《시경 詩經》의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경》〈소아 小雅〉 상체편(常篇)의 내용을 보면,
“환하게 빛 넘치는 산앵두 꽃 피었네. (常之華 鄂不)
세상 사람 중에서 형제 같음 또 없네. (凡今之人 莫如兄弟)
들의 할미새 호들갑 떨듯 형제면 어려움 급히 구하네. (脊令在原 兄弟急難)
아무리 좋은 벗 있어도 그럴 땐 탄식만 하리. (每有良朋 況也永歎)
집마다 화목하여서 처자들 즐거우려면, (宜爾家室 樂爾妻努)
형제의 도리 생각해 보게 그게 앞섬을 알게 되리. (是究是圖 亶其然乎)”
라는 구절이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할미새[脊令]는 제비의 일종으로, 꼬리는 길고 부리는 뾰쪽하며 등은 청회색이고 목 밑은 검다고 한다. 현존하는 제(悌)자 그림에 그려진 새를 보면 이와 같은 할미새의 외형을 비교적 충실히 따른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새의 모습을 관념적으로만 표현한 것이 많다. 할미새가 갈 때는 꼬리를 흔들고 날 때는 울기를 끊이지 않는데, 이 모양이 매우 급한 일에 서로 도우는 듯하다 하여 형제간의 급난(急難)에 비유한 것이다. 실제로 ‘척령재원 형제급난(脊令在原 兄弟急難)’이라는 《시경》의 문구를 그대로 인용하여 화제로 삼은 그림도 있다.
한편, 상체는 앵두와 같은 과목(果木)인데, 줄기가 길어 꽃이 아래로 늘어지면서 꽃받침이 서로 함께 모이면서 환하고 밝게 피므로 형제간에 우애있는 것에 비유된 것이다. 〈흥부가〉에서도 《시경》의 이러한 내용을 인용하고 있음을 본다. 흥부가 끼니거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하여 형 놀부집에 갔으나 놀부가 모른 척 하니 흥부가 한탄하는 대목에,
“애고 형님 왠 말이오 동부동모(同父同母) 같은 혈육 다뭇 둘인 친형제로, 이름자 항열하든 동생 홍부 모르나이까. 구세동거(九世同居) 장공예(張公藝)는 형제 우애 본을 남겨 한 울 안에 살았었고, 척령은 짐승이나 급난지의(急難之義) 밝히었고, 상체는 꽃이로되 담락지정(湛樂之情) 품었으니, 하물며 인생(人生)되어 만물지영장이니 동기간 우애하는 형제의 정 모르리까.”
하였다. 이로써 조선 시대의 서민들은 보편적으로 할미새와 상체를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이 확실해 진다. 제자(悌字) 그림의 할미새는 보통 제자의 심방변의 두 점을 대신하여 두 마리의 할미새가 입을 서로 마주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상체는 제(弟)자의 윗 부분에 붙여 그려지거나 글자의 획 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현존하는 제자 그림에 나타난 할미새나 상체꽃을 보면, 할미새나 상체꽃의 본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그림을 그린 화가가 실제로 그것들을 못 본 탓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화가들의 관심사가 할미새나 상체꽃의 외형을 충실히 묘사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 표현에 더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충자(忠字) 그림은 용과 잉어, 그리고 새우나 대합이 충자(忠字)의 각 획(劃)을 대신하여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충자의 ‘中’ 부분에는 용과 잉어가 등장하는데, 잉어가 용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心’ 부분은 새우와 대합이 획을 대신하여 좌우로 배치되기도 한다. 때로는 ‘中’자의 가운데 획을 대나무로 대신하고 새우를 구부려 그려 ‘口’부분을 그리기도 한다.
어떤 충자 그림의 경우는 거북이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드문 예이지만 “어변성룡 하합상하 용봉직절 비간쟁간(魚變成龍蝦蛤相賀 龍逢直節 比干爭諫)”이라는 화제가 그림의 여백 부분에 덧붙여 쓰여 있는 그림도 있다. 이 충자 그림에 등장하는 용과 잉어는 《후한서 後漢書》〈이응전 李膺傳〉에 나오는 어변성룡(魚變成龍) 설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그 내용을 보면 대강 이러하다.
해마다 복숭아꽃이 물위를 흐르는 봄철이 되면, 황하(黃河) 상류 용문협곡(龍門峽谷)에 뭇 잉어들이 모여들어 급류를 다투어 뛰어 오르는데, 이 때 성공적으로 뛰어 넘은 놈이 용이 된다고 한다. 이 어변성용 설화와 관련하여 사람들은 선비가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는 것을 잉어의 등용문(登龍門)에 비유하였는데, 높은 관직에 오르면 나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편, 대합과 새우는 위의 화제의 하합상하(蝦蛤相賀) 내용과 같이 화합(和合)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인데, 이것은 새우 ‘하(蝦)’의 발음이 ‘화(和)’의 발음과 유사하고, 대합 ‘합(盒)’의 발음이 ‘합(合)’의 발음과 서로 같은 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개념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그 단어의 발음과 유사한 명칭을 가진 자연물이나 기물을 차용하여 그리는 예는 민화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이 충자 그림에 화합의 개념이 들어간 이유는 나라에 충성함으로써 군신(君臣) 간에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한편, 뜻으로 본 대합과 새우는 충절과 관련된 굳은 지조와 최상(最上)의 직위를 상징하고 있는데, 지조는 대합과 새우가 모두 단단한 껍질로 싸여 있기 때문이며, 최상은 이들이 가진 껍데기 ‘갑(甲)’을 첫째 라는 의미의 ‘갑(甲)’과 같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위에서 말한 화제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용봉직절(龍逢直節)’이라 함은 은(殷)나라의 걸왕(桀王)에게 충간(忠諫)하다가 죽음을 당한 관용봉(關龍逢)의 곧은 절개라는 말인데, 그가 죽자 뜰에서 서책을 등에 진 거북이가 나왔다고 한다. 충자 그림에 간혹 거북이가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런 사연을 가진 거북이 이다. ‘비간쟁간(比干爭諫)’이라 함은 상(商)나라의 충신 비간(比干)이 왕의 음란함을 보고 다투어 간(諫)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신(信)은 원래 ‘인언위신(人言爲信)’의 뜻으로 인간과 인간이 사회 관계를 맺어 나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인간의 말, 인간관계의 지켜야 할 도리, 또는 올바른 말, 규칙, 언약 등을 뜻한다. ‘신(信)’이란 사람 사이에 언약과 말과 규칙을 믿고 지키는 덕목이다. 그래서 서신(書信)이란 믿음을 전하는 글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화가들은 신자(信字) 그림에 편지를 등장시켰던 것이다. 신자 그림을 보면 새가 편지를 물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 새는 청조(靑鳥) 또는 흰기러기이다. 청조는 서왕모(西王母) 설화에 나오는 상상의 새인데, 그림의 새는 얼굴은 사람, 몸체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무고사 漢武故事》에 의하면 “칠월 칠일 홀연히 청조가 무제(武帝)의 궁전에 날아들었는데. 동방삭(東方朔)이 말하기를 이것은 서왕모가 이곳에 온다는 소식을 알리고자 함입니다.” 하였다. 이 그림에서 청조가 물고 있는 서신은 서왕모가 온다는 언약이요 또한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를 확인해 주듯이 어떤 신자 그림을 보면 대궐 같은 큰 기와집을 그리고 ‘요지춘궁 청조전신(瑤池春宮 靑鳥傳信)’이라는 화제를 함께 쓰고 있고 어떤 경우는 ‘청조애제 요지벽파(靑鳥哀啼 瑤池碧波)’라는 화제를 곁들여 쓰기도 한다. 한편, 흰기러기도 편지를 입에 물고 있는데, 이것도 청조와 같이 소식을 전한다는 면에서 같은 의미를 갖는데 ‘상림춘풍 백안전신(上林春風 白雁傳信)’이란 화제가 이를 말해 준다. 〈춘향가〉 에서 이도령과 춘향이가 이별하는 장면에 흰기러기가 등장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소매 잡고 가느니 못 가느니 이다지 섧게 우니 내 아무리 장부인들 철썩 간장 다 녹는다. 요지(瑤池)의 서왕모는 일쌍청조(一雙靑鳥) 날리어서 주(周) 목왕(穆王)께 편지 전코, 북해상(北海上) 소중랑(蘇中郞)은 기러기에 부탁하여 상림원(上林苑)에 상서하니, 백안청조(白雁靑鳥) 없을망정 남원 인편이야 없겠느냐”
하였는데, 이로써 흰기러기가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이유가 더욱 명백해 진다.
이 그림을 보면 거북이가 책을 등에 메고 있는 모습이 예자(禮字)의 시(示)변의 첫 번째 획에 그려져 있는데, 이는 《하도락서 河圖洛書》 고사(故事)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공자(孔子)가 행단(杏壇)에서 예(禮)를 강론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 옆에 ‘공부자예대수지하(孔夫子禮大樹之下)’라는 설명을 덧붙인 그림도 있다. 먼저 거북이에 대해서 말해 보자.
《한무고사》에 의하면, 하우(夏禹) 때에 낙수(洛水)로부터 나온 거북이의 등에 글이 쓰여져 있었는데, 이것이 홍범구주(洪範九疇)의 기원이 되었다 한다, 홍범은 주서(周書)의 편명(篇名)이며, 구주는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의 물음에 대답한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의 대법(大法)을 말한다. 구주의 여섯 번째에 예용삼덕(乂用三德) 이라는 것이 있는데, 삼덕(三德)은 정직(正直)·강극(剛克)·유극(柔克)을 말한다. 이 삼덕이 예의 기본이 되는 것이므로, 이와 관련하여 거북이가 서책을 등에 지고 있는 모습이 예를 상징하는 소재로 선택된 것이다. ‘낙구부도 천리절문(洛龜負圖 天理節文)’ 이라는 화제가 있는 그림도 있는데, 이를 미루어 보면, 이 서책을 하늘의 이치와 부모 자식간 혹은 부부간에 지켜야 하는 예를 써서 문서화 한 절문(節文)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의자(義字)의 넓은 획 속에 《삼국지 三國志》에 등장하는 유비(劉備)·관우(關羽)·장비(張飛)가 도원(桃園)에서 결의(結義)하는 장면이 곁들여 그려지기도 하며, 때로는 복숭아꽃만 그려 도원 결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의자(義字)의 첫 째 두 째 획에 두 마리의 새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기도 한다. 먼저 도원 결의에 대해서 말한다면, 삼국지의 세 주인공은 장비의 별장 뒤에 있는 복숭아나무 언덕에서 의형제를 맺었는데, 《사기 史記》에 의하면,
“새 사람이 재배하고 맹서하고 가로되, 유비, 관우, 장비가 비록 성(姓)이 다르나, 이미 의형제를 맺었으니 동심(同心) 협력하여 어려움과 위험을 구하고, 위로는 나라에 보국하며, 아래로는 백성을 편하게 하리라. 같은 해와 달, 날짜에 태어남을 구하지 않고 다만 같은 날짜에 죽기를 원하였다.”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의(義)의 상징으로 선택되어 이 그림에 곁들여 그려지게 된 것이다.
한편, 두 마리의 새는 《시경》 〈주남 周南〉의 관저편(關雎篇)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운다 운다 물수리 섬가에 물수리 (關關雎鳩 在河之州)
아리따운 아가씨 사나이의 좋은 짝 (窈窕淑女 君子好逑)”
이 시구를 구태여 소개한 이유는 의자(義字) 그림들 가운데 일부가 ‘관저화명(關雎和鳴)’ 이라는 화제를 달고 있기 때문인데, 《시경》의 관저편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주제가 의(義)와 관련 있다기 보다도 남녀간의 애정을 노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춘향가에서 이도령이 책방에서 춘향이를 생각하면서 이 구절을 읊조리고 있었음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하여튼 의로움은 상호 화합이 이루어졌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 서로 어우러져 지저귀는 한 쌍의 물수리도 의의 의미와 관계없지는 않겠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보면 글자의 뜻과 서로 연결되지 않는 소재인 것 같은데, 이러한 소재가 이 문자 그림에 등장하게 된 것은 화가의 개인적인 자질에 기인한다기보다, 서민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낙천적 성향, 다시 말하면 집요하게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넘어가는 관심 속의 무관심으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염(廉)은 청렴하고 검소하며, 곧고 바름을 말한다. 또한 받을 때를 알아서 받고 받지 않아야 할 때를 가려서 처신하는 것을 말한다. 염자(廉字) 그림에는 봉황새나 게[蟹]가 단독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사슴이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봉황(鳳凰)이 등장하는 이유는 봉황의 성품이 염(廉)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봉황이란 암컷인 봉과 수컷인 황을 함께 이르는 말로 성인(聖人)이 세상에 나오면 이에 응하여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의 새인데, 닭의 머리에 뱀의 목, 제비의 턱에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고, 오색 빛에 오음(五音)을 낸다고 한다. 문헌에 의하면 봉황은 살아 있는 벌레는 먹지 않으며, 살아 있는 풀은 뜯지 않으며, 모여 살지 않고 어지럽게 날지 않는다. 또 그물에 잡힐 것을 걱정하지 않으며,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조[粟] 따위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봉황의 성품이 염(廉)과 상통하기 때문에 청렴과 절제의 상징적 존재로써 이 그림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봉비천인 기불탁속(鳳飛千刃飢不啄粟) (봉은 천길을 날며, 배가 고파도 조 따위는 먹지 않는다)”라는 화제를 곁들여 그 의미를 분명히 새기기도 한다.
한편 게의 등장은 그것의 행동 습성을 인간의 윤리에 조응시킨 결과이다. 간혹 “염계한천 전진후퇴 울림극석 율리송국(廉溪寒川 前進後退 鬱林戟石 栗里松菊)” 이라는 화제가 붙은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 화제의 내용을 통하여 게가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이유를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게는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서는 것(전진후퇴)을 반복하면서 먹이를 찾는 행동 습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를 인간이 지녀야 할 도리, 즉 남이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 때 무조건 사양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분수에 맞으면 즐겁게 나아가 호의로 받아들이고, 분수에 넘치면 과감히 물러나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는 염(廉)의 도리에 조응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출처지리(出處之理)란 세상에 기꺼이 나아갈 때와 반대로 미련 없이 물러나 은둔할 때를 알아 처신하는 것이 인간의 현명한 도리임을 말하는 것으로, 도연명이 다섯되 쌀에 몸이 팔려 아전들에게 머리를 숙이기를 부끄러워하여 미련 없이 율리(栗里) 로 숨어들었다는 고사와 같이 염(廉)의 도리와 상통하는 것인데, 게가 자기의 집에서 나와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하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곧 자기의 집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는 모습보고 사람들은 게의 습성을 인간의 출처지리에 조응시켜 해석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치(恥)’는 치격(恥格)을 말한다. 즉,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스스로 알고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에는 그들의 나라가 망한 데 대하여 부끄러움을 스스로 느끼고 은둔하면서 비극적인 생애를 마친 백이(伯夷), 숙제(叔齊)의 산중(山中) 생활이 중심 소재로 즐겨 그려진다.
백이, 숙제는 주(周) 무왕(武王)에 의해서 그들의 나라가 망하자, 주나라의 곡식 먹기를 부끄러워하여 수양산(首陽山)에 숨어살면서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끝내는 굶어 죽었다고 하는 은(殷)나라의 은둔처사(隱遁處士)이다. 치자(恥字) 그림에는 이렇게 백이 숙제의 모습을 직접 묘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백세청풍 이제지비(百世淸風 夷齊之碑)’라는 글이 쓰인 비(碑)의 형상을 인물 대신으로 그려 넣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달과 매화나무를 그려 넣기도 하는데, 이 달과 매화는 ‘수양매월 이제청절(首陽梅月 夷齊淸節)’이라는 화제에서 보듯이 백이 숙제가 수양산에서 나라에 대한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자연과 더불어 일생을 보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달은 자연을 벗삼아 생활하는 은일처사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벗이었으며, 매화는 은일처사 도연명을 비롯하여 맹호연, 임포 등 수많은 처사들이 애호하였던 정절의 화신이요 고고함의 상징이었다.
지금까지 문자 그림의 성격과 작화 의도, 그리고 각 문자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와 그것이 지니는 내용과 상징적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문자 그림은 한자 문화권에서만 있을 수 있는 특수한 조형예술로써 한자의 표의성과 조형성이 동시에 드러나면서 조화를 이루는 글씨 그림임과 동시에 그림 글씨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본 글에서 언급한 윤리문자그림은 한자의 표의성과 조형성이 오묘하게 조화된 것으로 높이 평가할 만한 그림이다.
서민들은 현재의 제약된 상황을 벗어나 보다 행복하고 풍요로우며 영생 불사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공동 소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효제충신예의염치’의 윤리 덕목을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베푸는 교화 사업과는 상관없이 그들 스스로 선을 쌓고 공을 세움으로써 선의 경지에 도달하여 영원히 늙지 않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하였다. 이러한 소망이 배후에서 숨쉬고 있는 윤리문자 그림은 다른 어떤 민화보다도 교육적인 의미가 강한 그림이면서 수명장수와 행복에의 염원이 담긴 길상화라고 할 수 있다.
윤리문자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당시 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사례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소재들은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나 고사 등에서 취택되는 경우와 《시경》이나 《삼강행실도》등에서 인용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학문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선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던 《시경》의 내용이 그대로 인용되고 있었던 것은 조선 후기의 고전 언해 사업의 영향이 컸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끝으로 윤리문자도라는 개념은 지금까지 학계에서 사용된 바가 없는 것이지만 본 글에서 다룬 문자 그림의 중심 소재 문자가 모두 윤리덕목임을 감안하여 사용해 본 것이다. 실로 민화에 있어서 문자를 소재로 하고 있는 그림은 이러한 윤리덕목외의 것은 매우 드물며, 있다고 하더라도 혁필(革筆) 혹은 혁화(革畵)의 형식으로 그려진 것들이며, 각 문자 사이의 뚜렷한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제작 의도의 측면으로 보아도 단순한 장식용인 것이 많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의 그림은 단순하게 문자도라고 말할 수 있으되 그것은 윤리문자도를 포함하는 개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