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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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조선시대의 사직단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직후에 건립되었다. 장소는 경복궁의 전면 오른쪽에 해당하는 한성부 서부 인달방(仁達坊)이었다.

이는 경복궁의 전면 왼쪽방향에 건립된 종묘에 대응되는 방향이다. 왕궁의 전면 오른쪽은 방향으로는 서쪽이다. 서쪽은 해가 지는 방향으로서, 음양으로 치면 음이 된다. 토지신은 하늘에 대응하여 음이 되므로 음사(陰祀)를 드리는 사직단이 서쪽에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 서쪽은 계절로는 가을이 되는데, 이는 결실과 함께 응징 또는 처벌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직단의 제사는 조선시대 최고의 국가의례인 대사(大祀)로 거행되었고 왕이 직접 올렸다. 국사와 국직의 신위에는 나라의 안위를 좌우하는 토지와 곡식의 신이 계신 것으로 간주하여 보호에 남다른 주의를 기울였다. 따라서 국사와 국직의 신주를 건드리는 사람은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역적으로 간주하였다.

실제로 선조 18년에 주홍(朱洪)이라는 종이 국직(國稷) 신주를 훔쳤다가 발각된 일이 있었는데, 주홍은 대역죄로 간주되어 참형을 당하고 그의 처자식들도 연좌되어 처형되었다.

조선시대의 사직제는 정시제(定時祭)와 임시제(臨時祭)로 구별할 수 있다. 정시제는 춘추의 두번과 동지 뒤의 세째 술일(戌日)인 납일(臘日)에 지냈는데 기일이 정해져 있었다. 임시제는 나라에 흉사나 길사가 있을 때마다 일의 사유를 아뢰고 올리는 고유제(告由祭)로서 기일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중에 정시제는 왕이 직접 지내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사정상 신하에게 대행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사직단이란?

사직단은 토지신인 사단(社壇)과 곡식신인 직단(稷檀)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조선시대의 사단에는 영내의 토지신만 모신 국사(國祀)의 신위를 모셨고 직단에는 영내의 곡식신인 국직(國稷)의 신위를 모셨다. 또한 사단에는 중국의 상고시대에 토지행정을 담당했던 후토씨(后土氏)를 같이 모셨으며 직단에는 농사를 관장했던 후직씨(后稷氏)를 배향하였다. 사단과 직단은 동서의 방향으로 나란히 세우는데, 사단을 동쪽에 두고 직단을 서쪽에 둔다.

사단과 직단은 지붕을 만들지 않고 그냥 노천에 드러나게 하며 네모의 모양으로 만든다. 지붕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토지신과 곡식신이 자연신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비바람을 막는 시설을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모양이 네모인 이유는 과거에 땅이 네모났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모양을 상징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사단과 직단은 사방의 토지를 상징하는 사방색의 흙을 방향에 따라 쌓고 그 위를 황색의 흙으로 덮는다. 즉 동쪽 방향은 동방색인 청색의 흙을, 서쪽 방향은 서방색인 흰색의 흙을, 그리고 남쪽 방향은 남방색인 붉은색의 흙을 쌓고 북쪽 방향에는 북방색인 검은색의 흙을 쌓는다. 이는 사직이 토지와 곡식의 신이므로 사방의 토지신을 모두 포괄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위를 황색의 흙으로 덮는데, 이는 왕이 사방을 덮는 것을 상징한다.

사직단과 사직제의 과정

사직제는 대사(大祀)였으므로 왕이 사직단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서는 7일간 재계를 거행해야 했다.조선시대의 국가제례는 제사의 종류에 따라 재계일수가 정해져 있었는데, 대사는 7일 중사(中祀)는 5일 그리고 소사(小祀)는 3일이었다.

재계기간에 왕은 문병이나 문상을 하지 않으며 주색을 끊고 오직 제사에 관한 일만 생각해야 했다. 제사당일에 왕은 사직단으로 행차하여 국사단(國社)부터 예를 올린다. 그런데 사직제에서는 왕이 국사단에 향을 피우기에 앞서 대축(大祝 : 제사의 축문담당자)이 희생물의 피와 털을 땅에 묻는 절차가 있었다. 이는 땅속에 있는 토지의 신을 불러오기 위한 의식이었는데, 제천행사에서 연기로 하늘에 있는 신에게 정성을 드리는 것에 대응한다고 하겠다.

대축(大祝)이 희생물의 피와 털을 묻으면, 이어서 왕이 국사단의 신위로 가서 직접 진향(進香)과 진폐(進幣)를 거행한다. 진향은 국사단의 신위에 향불을 피워 올리는 것인데 세차례에 걸쳐서 한다. 진폐는 비단을 묶은 폐백(幣帛)을 토지신에게 예물로 올리는 의식이다.

왕은 국사단에서 진향과 진폐를 마치고 이어 옆에 배향한 후토씨 (后土氏)의 신위로 가서 동일한 의식을 거행한다. 이 의식이 끝나면 왕은 다시 국직단(國稷壇) 및 여기에 배향한 후직씨(后稷氏)의 신위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진향과 진폐를 반복한다.

다음으로 진찬(進饌)을 하는데, 천조관(薦俎官)이 국사단 및 국직단의 신위 앞에 제수(祭需)를 차리는 의식이다. 이것도 앞의 진향, 진폐와 마찬가지로 국사단에서부터 시작한다.

제수로는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를 이용한다. 다음으로 왕이 초헌관(初獻官)이 되어 국사단의 신위에서부터 술을 올리는 예를 행하는데, 이를 초헌례(初獻禮)라 하였다. 초헌례란 신에게 첫잔의 술을 올리는 의식이란 뜻이다. 유교제례에서는 초헌관이 바로 사제의 대표로서 제사장의 기능을 하였다.

초헌례에는 예제(醴齊)라는 술을 이용하였는데, 예(醴)는 체(體)와 통하는 글자이다. 이 술을 예제 (醴齊) 또는 체제(體齊)라 부르는 이유는 술을 숙성시킨 후에 술찌기가 위아래에 모두 있기 때문으로 지금의 단술과 유사하다.

이어서 고위관료 중에서 아헌관(亞獻官)과 종헌관(終獻官)으로 선발된 사람이 아헌례(亞獻禮)와 종헌례(終獻禮)를 거행한다.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의 삼헌례(三獻禮)가 끝나면 이어서 음복(飮福)을 하고 국사단과 국직단의 신위에 올렸던 폐백과 축문 등을 모아서 땅을 파고 묻는다.